"7분 18초로 시작해 4분 57초로 끝냈습니다"

오전 5시 38분.
양재천 지하 통로 전광판에는 19도,
습도 64%가 표시되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고, 바람은 선선했습니다.
"오늘은 정말 달리기 좋은 날이네."
생애 첫 풀코스 마라톤 완주 이후 어느덧 6주.
오늘 14km 롱런을 끝으로 또 한 주의 훈련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불과 한 달 반 전만 해도 42.195km를 겨우 완주하고는
다시 좀 더 높은 목표를 세웠습니다.
Sub4, 53세 늦은 나이에 도전하는 4시간 내 완주가
쉽지 않은 만큼,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
풀코스 완주자의 새로운 숙제, 속도가 필요합니다
이번 주 훈련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수요일 6km 회복주.
금요일 8km 인터벌.
일요일 14km 롱런.
주간 총 거리 28km.
지금의 저에게 이번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번 주는 풀코스 이후 회복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서브4를 향해 방향을 틀기 시작한 첫 주였기 때문입니다.
힘든 줄만 알았던 인터벌, 사실은 재밌었습니다
금요일에는 생애 첫 본격 인터벌 훈련을 했습니다.
솔직히 조금 긴장했습니다.
인터벌은 왠지 선수들만 하는 훈련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해 보니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힘들기는 했지만 새로운 속도를 경험하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저는 Zone2와 LSD 위주였습니다.
천천히 오래 달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속도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직 초보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14km 롱런.
전반 80%는 느리게, 후반 20%는 신나게

첫 1km는 7분 18초.
정말 천천히 시작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답답해서 견디지 못했을 속도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몸도 깨워야 하고,
심장도 깨워야 하고,
근육도 깨워야 한다는 것을.
천천히 시작한 덕분인지 몸은 점점 더 가벼워졌습니다.
2km는 6분 51초.
3km는 6분 44초.
4km는 6분 35초.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속도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10km는 5분 41초.
11km는 5분 20초.
12km는 5분 13초.
13km는 4분 57초.
가장 힘들어야 할 후반부에 가장 빨리 달리고 있었습니다.
천천히 시작했고, 끝날 때 가장 강했습니다.
러닝에서는 이것을 '네거티브 스플릿'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후반에도 여유가 남는 달리기.
아마 이것이 진짜 달리기의 맛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 안에 아직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을 느끼는 기쁨.
80%를 참고,
천천히 달린 뒤에만 만날 수 있는
작지만 짜릿한 보상 말입니다.
심박수는 높았지만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훈련에서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심박수였습니다.

평균 심박수는 153.
후반 가속으로 최대 심박수는 184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5주 동안 꾸준히 해 온 Zone2 훈련과 LSD 훈련이
조금씩 효과를 내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달리기는 참 신기한 운동입니다.
하루아침에 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변해 있습니다.
심장이 조금 강해지고,
호흡이 조금 편해지고,
다리가 조금 더 오래 버티고,
무엇보다 생각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결과만 보았습니다.
지금은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달리기는 모든 것을 바꿉니다
기록을 바꾸고,
체력을 바꾸고,
생활습관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어쩌면 인생까지 조금씩 바꿔 나갑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제 풀코스 최고 기록은 4시간 17분.
목표인 서브4까지는 아직 17분이 남아 있습니다.
느린 거북이는 여전히 느립니다.
하지만, 저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거리가 결국 속도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속도는 마일리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쌓아 온 회복주와 LSD가
이제 인터벌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14km 롱런은 단순한 롱런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천히.
꾸준히.
그리고 멈추지 않고.
그렇게 또 다음 주를 향해 달려가 보겠습니다.
언젠가 여러분도,
저처럼 달리기를 통해 찾아온 작은 변화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도 함께 느끼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