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면, 계속 달려야 합니다.”
이 책 제목은 단순한 러닝 문장이 아닙니다.
마라톤을 좋아하는
한 신부님의 이야기이자,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조용한 응원입니다.
김하상 바오로 신부님은
가톨릭 사제이자 러너입니다.
미국 유학 중 마라톤을 시작했고,
보스턴·뉴욕·시카고·도쿄 같은
세계 주요 마라톤뿐 아니라
국내 여러 대회에도 참가해 온
‘달리는 신부님’입니다.
더 특별한 점은 달리기를
단순한 취미로 끝내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 프로젝트를 통해
가난한 이들을 돕는 사명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첫발은 언제나, 나를 넘어 타인을 향한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것은
달리기의 방향이 ‘나’에게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보통 우리는 달리기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 기록을 줄이기 위해
- 살을 빼기 위해
- 건강해지기 위해
- 나 자신을 이기기 위해
물론 모두 맞습니다.
하지만 김하상 바오로 신부님의 달리기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나를 위한 달리기에서
타인을 향한 달리기로.
익숙한 나를 벗어나 원하는 나를 향해.
그리고 결국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세례명, 정하상 바오로의 의미
김하상 바오로 신부님의 이름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성 정하상 바오로입니다.
정하상 바오로는 1795년에 태어나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 평신도 성인입니다.
아버지는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였고,
정약종은 다산 정약용의 형이었습니다.
정하상은 조선에 사제가 없던 시절,
성직자를 모셔 오기 위해
북경을 여러 차례 오갔습니다.
기록에는 9차례 북경을 왕래하며
사제 파견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리’입니다.
그 시대의 북경행은
오늘날 해외여행이 아니었습니다.
길은 멀고,
위험했고,
신앙은 박해받았고,
실패 가능성은 컸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걸었습니다.
또 걸었습니다.
다시 걸었습니다.
어쩌면 정하상 바오로의 삶도
하나의 울트라 마라톤이었습니다.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단순하다?
책의 핵심 문장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참으로 강한 것이다.”
달리기를 해 보면 알게 됩니다.
진짜 싸움은 남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어제의 나와의 싸움입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의 싸움입니다.
조금 더 편해지고 싶은 유혹과의 싸움입니다.
더 높은 목표를 바라보며
매일 최선을 다해 달리는 사람.
그 사람의 삶은 단순해집니다.
톨스토이는 말했습니다.
“진정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삶의 모습이 단순하다.
그들은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복잡한 생각이 많아도
신발 끈을 묶고 나가면
결국 남는 것은 하나입니다.
오늘도 달릴 것인가.
멈출 것인가.
바보스로울 정도로 단순해지면
강해지는 것입니다.
100마일을 달리는 법
울트라 마라톤 주자 소렌의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64세에 100마일,
즉 160km를 완주한 그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나이에 100마일을 달릴 수 있습니까?”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100마일을 달리지 않습니다.
나는 1마일을 100번 달립니다.”
풀코스 42.195km도
한 번에 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1km를 42번 반복하는 것입니다.
서브4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3시간대 러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5km,
이번 주 10km,
이번 달 롱런 하나를 쌓아 가는 것입니다.
나의 꿈도 아직 늦지 않았다
신부님의 책은 나이 든 러너들에게도 큰 용기를 줍니다.
조지 시핸 박사는 45세에 마라톤에 입문했고,
61세에 3시간 1분을 기록했습니다.
캐나다의 에드 위트록은
72세에 2시간 59분,
그 다음 해에는 2시간 54분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몸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이는 핑계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멋진 도전의 배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53세에 첫 풀코스를 완주한 저에게도
이 이야기는 큰 힘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첫발
달리는 신부님이 쓴 책은
달리는 티베트 승려 샤콩 미팜의
말씀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현명한 자는 상상력이 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가능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어리석은 자는
상상력이 없기에
아무런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달리기도 상상력입니다.
지금의 나는 느립니다.
하지만 원하는 나는 더 멀리 갑니다.
지금의 나는 힘듭니다.
하지만 원하는 나는 끝까지 갑니다.
지금의 나는 서브4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원하는 나는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시 첫발입니다.
살아있다면, 계속 달려야 합니다.

PS) 정말 놀라운 사실, 그리고 설레는 기대
이 책은 매주 수요일 오후 러닝 크루,
동갑내기 친구 정진혁 사장이 선물로 준 책입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정사장의 친구가 바로 달리는 신부님이라는 것,
그리고 신학교까지 차로 데려다준 사람이
정사장이라는 점입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좁습니다.
그래서 더 따뜻합니다.
언젠가는
우리 동갑내기 러너들이 모두 모여
함께 달리는 그 축복의 날을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상상해 봅니다.
잊지마십시오
‘상상력 = 가능성’
상상력이 곧 가능성입니다.
